http://blog.naver.com/magikpepper?Redirect=Log&logNo=20012585930
쭌탱오빠 전준주, 설화가 쭌탱에게루 -> 여기서 설화는 전준주가 장자연을 부르는 애칭. (수원구치소, 대구구치소 등에 수감돼 있을때 보냄) 난 정말루 잘지내구 있어 김사장 김종승이가 제맘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만 나 오케이 설화.자연잉. 종승이와 계약(전속)을 잘못한거 같어
오빠 나 증말루 힘들당 종승이 그놈때메 요즘 나에맘을 누구에게 다 말할수 없는 지금이야 동생에게두...오빠 힘들지~ 고마워 정말루...
나 자연이 설화. 오빠가 불러주는 색소폰 악기 연주 소리들이 넘 듣구싶다. 신청곡두 많은데 아쉽~ㅠㅠ 내말 항상 변함없이 다 들워줘서 고마워 은인자중 하구있는 쭌탱이 오빠맘 내가 다 알아요. 나 자연잉 설화 깜둥 깜돌이가 천지파란 쭌탱에게루 보냄이여라잉 보고 싶어두 볼수 없는ㅠㅠ 내맘 알쥐
쭌탱오빠가 지어준 닉네임이 설화... 오빠 내맘 알쥐 빨랑나와서 오빠가 자연이 매니저 해죠라. 아르찌 내가 힘들게 무진장 마니 힘들게 할꼬야 정말루... 오빠 마니 보구싶다. 근데 오빠 내가 전에두 말했었잖아. 김종승 김사장 주변에 안좋은 말들은 꽤 많지만 문제는 김사장 올리브나인사람 깨지구 지금 더큰데로 전속 계약을 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구 위약금은 넘 심한 금액이긴 해두 다빈이두 서희 은하 소영 진실... 글구 지금두 신인에다 미숙, 선미 등 잘나가는 연예인들두 솔직히 김사장 말이 넘 안좋은 말들 마약쟁이에다 변태 심하단 말들 근데 빨리 판단을 할라구 심하게 재촉을 해서 어트케 해야 할지 그래서 오빠에게 물어볼라구 2년 안에 스타 대열에 등극할 수
받는 너 전준주 June 田, 안양시 안양우체국 사서함 11호 천지파란.쭌탱
pd 글구 언론사 대표란 사람 정말 미친 변태놈 새끼야 김 사장은 광고 회사 설립하는데 미쳐있구 김 사장은 날 완전 습관처럼 날 괴롭히구 울 회사 가족들 중에서두 김 사장이 넘 심하게 오라 가라 강요를 지맘대로 해서 터지기 일보직전이야 내가 지금껏 술접대 성상납 했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날 도와 줄거구... 지랄? 난 솔직히 믿을수가 없구 안믿어 내맘 알쥐 오빠 나 설화란 이름 끝까지 내맘속에 간직해 지킬게.. 오빠두 내가 지어준 닉네임 잊어 버리면 죽음이지
감독, PD, 대기업, 방송사, 언론사, 금융, 증권, 일간지 신문사 등(기획사 대표들까지두...) 이런 사람에게 무슨 한 셋트 작업해야 끝나는 거라는 식... 스타 진입로... 기본적으로 거쳐야할... 근데 난 김사장이 하라는대루 김 사장이 하라는 대루만... 그렇게만 하면 김 사장이 펜트하우스 코끼리 영화 촬영 전에두 캐스팅~ 전에두 단 한번에 스타덤에 오를수 있는 방법이라구 해서 그 영화 출연두 들러리 촬영분 씬두 정말 하기 싫었지만 김 사장이 제맘대루 결정해버리구 술집에 그거까지.. 글구 날 괴롭힘 당하게 만들구 안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호텔방에서 개같은 개꼴라질 당하게 나두 선택할 권한두 있는데 무조건 하라는 식이구... 내가 무슨 창녀두 아니구 내가 술집 글구 그런 개꼴라질 당할려구 계약한 RJTEN 아닌데 김 사장과 계약 전에두 김 사장에게 당할거 다 당해내구... 줄것 안줄것 다 주구 나뿐만이 아니니깐... 연예지망생, 신인 무명에 가까운 신인들두 나처럼 똑같이....자기 여자처럼 다 해쳐먹구 직원들 모두 일찍 퇴근시킨 시간에 접견실루 델꼬가서 회사두 술집두 호텔방두 아닌 개같은 곳에서 늦은 저녁 새벽에두 접견실 앉아 있는 욕실, 별실루 있는 침실... 얼마나 심하게 당했음 신고두 못하구 어린 신인... 연예지망생 애들을 접견실루 델꼬가서 술 와인 같은데 마약 같은걸 몰래 타서 나두 김사장이 그런식으로 얼마나 많은 애들을 가지구 놀았는지 아니깐... 암튼 무서워서 나두 3층 접견실 만들기 전에두 그랬으니깐 오빠 정말 미칠것 같어 뭐가 이리두 복잡하구 접대하구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글구 솔직히 이상한 사람들에게 내가 이렇게 당하구 그런거 확인을 해서 인터넷 등 그런 곳에 올려서 ... 꿈두 이루지 못하게 알려질까봐서!
오빠가 빨리좀 나와서..날좀 도와주라 하루하루 무슨일이 생길까봐서 터질 것 같아서 불안하구? 초조하구 그래서 더 미칠것 같아 같은 말이지만 울언니 오빠들이 알게 될까봐서 울언니 오빠가 내아는 연예동녀들이 알게 될까봐서 BB 무서워 미칠것 같어. 어떻게 하면은 쉽게 돈벌 그런 궁리만..하구 있는 개자식이구 모든일을 넘쉽게 해결할려구까지 ... 미안 나 이렇게라두 오빠에게 말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아서 뒷장엔 오빠가 부탁한 전화번호 글구 집주소야..
jUNE.오빠 나 설화 십일월 달두 나에겐 넘 잔인한 달이야 정말루 오빠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참구 버텨왔는데 오빠 앞으로 한달 정두만 더 지나가면 2009도가 돼 김사장 좀종승 정신이상 미친 새끼가 광고회사 설립할 때 그때까지만 참으라구.. 요번년두 7월 8월 정도면 회사 설립 될거라구 근데 모두다 날 수없이 수없이 이용만 해먹구 오빠 정말 미칠 것 같다 증말 숨이 맥혀서 죽을것만 같어. 넘 힘들어 광고 회사만 설립된다면 난 톱스타 되는건 초읽기 식이라구 그거 하나 믿구 온갖 추욕 다 견뎌 냈는데 오빠 경찰에 검찰에 뛰어들구 싶은데! 뛰어들수두없구 이천칠년 5~6월부터 물론 김사장에게 당한거 빼구 지금까지 이번달 초까지두 내가 어떻게정말정말 하루하루 마음편한 적이 없었어 매일매일 같은 연예인들에게는 내색두 잘 못하고 동생에게만 조금 불안하구 우울하구 두렵구 요즘들어 하루 몇 번씩 x 매달구 자살 같은걸 해버리구 모든 꿈들 다 정릴해버리구 근데 하지만 날 바라보구 있을 엄마 아빨... 엄마 아빠 제삿날두..미친 개자식 울언니 울아빠같은 울오빠 생각해서라두 이런 생각하면 안돼니깐 그렇게 하면서 잘보여야 하니깐..김사장이 술접 등 시킨 개같은 변태 새끼들에게 잘보야야 하구 잘보이구 OK싸인만 떨어지면 개같은 거짓말들 OK모두가 광고회사 ...
모두가 광고회사 설립하면 아니 광고회사 설립하는데 모두 김사장에게두 나에게두 최고루 큰도움 줄 사람이라구 나뿐만아냐 오빠에게두 말했지만 신인 연예인 지금은 신인급 아닌 꽤 좋은 위치까지 올라갔지만 연예 지망생들을 걸려들기만 하면 닥치는데루 난게네들이 어디 잘나가는 보도년 나가요 년들 글구 유명 룸싸롱에서 일들해먹는 그런 애들인줄루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RJTEN.. 깨꼴라질 당해가면서 참구참구견뎌낸것이 얼만데 지금 설화 자연이 꼴이 말이 아냐 정말이야 철연료두 못받구 이런 지금에 상태에다 완죤하게 난 속은거구 참는거 못참을것까지두 전부다 참구 참아 왔는데 나에겐 넘 잔인했던 기억들만 가득 남은건 온갖 피해만 정신적인 피해뿐야 정말루 그 개자식들 날 놀이게처럼 개같은 짖을 했던 새끼들 모두다 죽여버리구싶어 아니 전부 모두다 꼭 죽여버릴꺼야 증말루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태국 여행 여행같은 그게 여행인가..BB 미친 중독자 도라이 변태 새끼 그 감독 한명에게 한명만해도 얼마나 날 제맘껏 놀이게처럼 내가 이젠 스타가 되는 일만 남아따구 지랄하면서 날 가지구 놀았는지두 몰라 얼마 전까지만 해두 날.. 연락을 피하구 하면은 김사장에게 무슨 짖을 당할지 모르니깐.. 오라면 가구 가라면 가구 아니 나 지금껏 이바닥에 발딛은 후부터 이렇게 지금까지 살았어 BB
아무두 날 진정으루 위로해줄 사람두 아니이런 위롤받을 수도 없는거가터 글구 날 이해해줄수있는사람도 없어 2008. 자연 설화가 쭌탱에게..
쭌탱에게루 편지 잘 받았어.. 내가 지금 상황을 말이라두 꺼내가라구 한다면 모두날 미친년 개걸년으루 취급할꺼야 오빠 나 어떠케 해..정말 죽구싶은데 이러면 안되는데 이런 생각하면 안된다는걸 알지만...오빠 고마워 내말 무슨 뜻인줄 알쥐 근데 다른 연예인들은 잘두나가는데 난왜 느림보 거북처럼 내나이 서른 돼기 전엔 드라마 영화 주연 꽤찰 거라구 울언니 오빠 글구 내아는 친한 동녀 연예인에게두 듀큐 언니 오빠에게두 근데 효림이 채아에게두 넘 힘들다 지금나 모든게 싫어 정말이야.
이하 숫자는 증거물 쪽수 1349 수없이 성납까지 성납을 그래서 그것들이 무슨 약점인지 다 만들어 놨단식으루 설마 김사장이 날 내몸 요구하면서 변태 같은 짓 한걸 테잎에 녹화 같은 것을 해 놓은건 아닌지 김 사장 그 자식 얼마든지 그러구두 남을 사람 이니깐
1350 오빠 죽어 버리면 모든것이 끝날까 근데 나두 정다빈이 처럼 그렇게 의미없이 정다빈이두 얼마나 마니 이바닥 생활하면서 시달림을 당하구 원치않은 자리에 참석강요... 내가 알구 있는건 아무것두 아니겠지. 오빠 죽어버리면 모든것이 끝나겠지 근데 다빈이처럼 다빈이는 그래두 유명세를 탔던 연예인 이면서두 아무일 없던것 처럼 다빈이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근데 난 이렇게 유명인두 아닌 무명에 가까운 내가 죽어버린다구 세상에 눈하나 깜빡하겠어. 오빠 걱정마 나 안죽어 근데 나 여기저기 넘 많이 아퍼 우울증 약두. 오빠. 언니 몰래 먹구있어 언니 오빤 내가 우울증약 끊은줄 알거덩 ㅠㅠ 약을 안먹으면 잠도 못자
1354 오빠 정말 완전 맘에 들지 않아 술접대에 그것 강요에 접대 등 그런 대가루 이런 대가성으루 아니면 내가 미친 새끼들 개자식들 나쁜짓 모두다 까발려...까발리지 말라는 식으루두 느껴질 만큼이구 무슨 무마 조건으로 들러리씬을 나에게 주는 것 같은 드러운 생각까지 든다. 울회사인인들두 아끼는 동생 연x자두..이곳저곳 여기저기 분위기 장난 아니구 이런 분위기 지금같은 분위기론 모두다 회살 뛰쳐나갈 생각까지! 오빠 기도 많이 해죠. .... 나말구두 다른 소속사 연예인들 두 다 이런식이겠지 하나같이 밝게 웃음짖구 다닌다 해두..
1423 피디, 감독 글구 방송사 피디 새끼들은 신인들 연예 지망생들 가지구 노는건 당연한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야... 방송사 감독 피디 들구 기업 금융회사 신문사 그런 곳은 스타가 되기 위해선 당연히 넘어야 할 산인것처럼 아니 이 바닥에 최고 장애물 같은거... 나 말구두 신인들 연예 지망생 들두 아니 다이어리에 있는 여자애들 글구 술접대 했던 굴구 강요받아 참석해서 접대한 사람들 모두다 적구 내가 아는 사람 적는다면 끝이 없을 거 같아 ...나에게도와준다고 한거 잘못되면 이 내용 계포 아저씨에게 꼭 보내죠 꼭 글구 모두 복수해죠 삼십일명 모두다..
1429 2009년도가 빨리 왔음 좋겠어 회사 동녀 X우도 김사장이 넘 괴롭혀서 회사두나오지 않고 나두 그렇게 하구 싶은데 난 엄마두 아빠두 엇으니깐 내가 이렇게 살아왔단게 울언니 오빠에게 알려지면 나 정말 어떻게 할지 몰라 넘 힘들어 죽고 싶은 맘뿐야 한국사람이란거 자체가 비참해.. .. 꿈속에서 자살하구 그러는거 정말 진짜처럼 느껴지구 무서워 미칠것 같어 그래도 내가 사람을 죽이는 생각 상상은 말아야 하는데.. 모든게 김사장 때문이야. 위약금까지 물구 가구 싶은데루 가는데 난.. 근데 난 김민선 언니처럼 될까봐서 할수두 없구,,
1437 사람들은 날 어떻게하면 이용해 먹을지 그런 생각만 하구잇구 첨엔 난 정말 몰랐어 그때부터 잘못돼기 시작된거였구 그대부터 지금까지 내가 우울증약 우울증 치료받기 전 6~7개월 전부터 지금까지 김사장이 회사 3층 접견장 그곳을 만들부턴 완존 제맘데루 그때 그전에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이런생가갷서 뭘 하겠어... 2008년 초엔 사극엘 출연기회가 있었지만 바람잡기식으루 연기력이 아직 부족하다구 그런씬 줄맘두 캐스팅할 맘두없으면서..미친 새끼들 그걸 이용해서 어린애들..
1445 오빠 정말루 죽구싶다 더이상 살구싶지두 않아 이런삶더이상 살구싶지두 않다. 울엄마울아빠한테 물어볼말이 있어서 오빠 지금내가 상태가 별루야..
1452 나 요즘 내가 누군지 모를때두 있는거같어 왜이럴까요 그냥 그건 별들에게 물어봐 내가 김사장땜에 글구 날 놀이게 삼아 오라가라벗으라 했던 미친 변태들 생각하면 x살해버리구싶지만 지금까지 내거 어떠케 얼마나 만는 시간을 상상조차두하기싫은악마들에게 얼마나많은 개꼴라지를 난 지금까지 일들 깨끄치 지우구 새롭게 시작하기루했으니깐.
1459 .솔직히 젤 먼저 죽이구 싶은 사람은 김사장이구 글구 조선일보 대표 미친 정신 도라이하고 전자신문사 언론사 인터넷신문대표, 금융회사 옛날 무슨 기자 출신 변태 정신이상자 새끼 죽이구 싶어
2003년 8월28일 오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시에 있는 한 은행에 40대 남자가 짤막한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이마 위의 머리가 빠져 없고 두꺼운 안경을 쓴 이 남자는 창구로 다가가서 직원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은행 금고를 열 수 있는 직원을 불러 신속히 이 가방에 25만 달러를 채우시오. 허용된 시간은 단 15분이오."
은행 강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무기를 꺼내 보이지 않았고 별다른 위협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쪽지를 내밀며 창구 직원에게 한 행동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보여준 것뿐이었다.
이 남자의 목 밑 옷 속에는 무언가 두툼한 것이 달려 있었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자 나타난 것은 금속으로 된 작은 상자였다. 그는 이것이 폭탄이라고 말했다.
은행 직원은 지금 당장은 금고를 열 수 없다고 말하고, 수납대에 있던 현금을 모아 남자가 갖고 있던 가방에 8,702달러를 채워 돌려주었다. 남자는 가방을 받아들고, 창구 앞에 있던 막대 사탕을 쪽쪽 빨며 은행을 나갔다. 그는 자신의 낡은 지오 메트로 자동차에 올라 은행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는 그다지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다. 연락을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이 남자를 발견한 것은 그가 은행을 떠난 지 20여 분 가량 지나서였다. 도주하는 차량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의아스럽게도 그는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서 있었다.
이리떼처럼 몰려든 경찰은 그의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길에 주저앉혔다. 즉시 연행하지 못한 것은 그의 목에 달린 폭탄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게 진짜 폭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폭탄이 곧 터질 것이라고 다급하게 말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당시 46세로 '마마 미아 피자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브라이언 웰스였다. 그는 같은 가게에서 30년 가까이 배달원으로 근무해 온 성실한 종업원이었다. 과거 10년 동안 그가 업무 시간을 어긴 일은 단 한 번인데,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였다.
웰스는 경찰에게, 자신이 은행 강도가 아니라 인질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장에서 다급하게 설명한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주문을 받고 피자 배달을 갔다가 흑인 세 명에게 인질이 되었다는 것, 그들이 총으로 위협하며 자신의 목에 폭탄을 부착했다는 것, 그 상태로 은행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 돈을 가져오고 지시에 따르면 폭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지시를 어길 경우 언제든지 목 밑의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것. "이건 진짜에요! 곧 터지게 된단 말입니다!" 그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경찰은 웰스를 길 위에 앉혀둔 채, 폭발물 처리반을 부르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911로 '폭탄으로 무장한 은행 강도' 신고가 들어온 지 30분이 지나서였다. 자신들은 거리를 둔 경찰차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웰스는 "사장님에게 연락했나요?" 하고 소리쳐 묻기도 했다. 근무 이탈을 한 것으로 오해할까봐 걱정한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25분이 지나갔다. 주저앉아 있던 웰스의 목 밑에 달린 금속 상자에서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웰스는 무의식적으로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폭탄은 그의 목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윽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폭탄은 진짜였던 것이다.
동영상 (Warning: Graphic) 폭발 장면이 생략된 다른 각도의 동영상
웰스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의 가슴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고 피가 솟구쳤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발물 처리반이 도착하기 3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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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웰스의 차를 수색하여 증거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은행 강도를 할 때 짚고 있었던 지팡이가 나왔다. 이 지팡이는 정밀하게 개조된 샷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차 안에서 발견된 범행 지시서였다. 손으로 공들여 쓴 이 지시서는 폭탄에 묶인 웰스가 스스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쏘우>의 게임 지시문 같은 이 지시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 XXXX 거리에 있는 OOO 은행으로 갈 것. 은행 안내원이나 창구 직원에게 요구 조건이 적힌 쪽지를 조용히 건넬 것. 경보를 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지시된 장소로 서둘러 와서 다음 지시서를 찾을 것. 각각의 장소에는 다음 장소를 알려 주는 지시서가 있으므로 이를 찾아야 함. 그 과정에서 당신은 열쇠 몇 개와 자물쇠 번호를 하나씩 구하게 되며, 이것들이 모두 있어야 목에 달린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음. 당신은 단순히 인질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중에 처벌을 받지 않을 것임.
가장 중요한 사항: 그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전화하지 말 것. 당신의 회사, 경찰,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사실을 알리면 바로 죽게 됨. 우리가 경찰차나 경찰 헬리콥터를 목격하게 되면 당신을 죽일 것임.
당신의 목에 채워진 강력한 폭탄은 오로지 우리의 지시를 정확히 따를 때에만 제거될 수 있음. 스스로 폭탄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 지시를 따르기 위해 허용된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임. 꾸물거리지 말 것. 폭탄은 55분 뒤에 폭발함. 은행에서 20분 이상 지체하지 말 것. 다음 지시 장소로 오는 데 25분 걸릴 것임. 따라서 여유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없음. 이 시간은 다음 지시서를 찾는 데 써야 함. 첫 번째 열쇠를 찾으면 폭발 시간이 연장될 것임. 우리의 지시 사항을 잘 따른다면 열쇠를 하나씩 발견하게 되며, 돈이 우리에게 무사히 전달된 뒤 마지막 열쇠와 자물쇠 번호를 받을 수 있음. ... (하략)
지팡이 샷건에 대한 지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제공한 무기를 갖고 조용히 은행 안으로 들어갈 것. ... 협조하지 않거나 은행을 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것. 무기 사용 설명서는 방아쇠 근처에 달려 있음."
지시서의 내용을 읽어 보면 <쏘우>의 지시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질에게 각 단계별로 시간 제한을 두고 'mission'을 수행하게 한 것이나, "It is your choice to live or bring death" 같은 문구가 있다거나 하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이 첫 번째 지시서의 맨 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ACT NOW, THINK LATER OR YOU WILL DIE!" 무엇보다, 웰스의 목에 부착된 폭탄이 존 크레이머가 희생자들에게 덧씌운 기기묘묘한 장치와 흡사하지 않은가. (<쏘우> 1편은 2004년에 개봉되었으므로 2003년에 벌어진 이 범죄와 직접 관련은 없다.)
경찰 조사 결과 이 폭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사제 폭탄인 것으로 밝혀졌다. 폭탄은 수갑과 같은 형태로 채워지는 강철 고리로 목에 걸리도록 되어 있고, 그 아래 금속 상자에 6인치짜리 파이프 폭탄 두 개를 삽입해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두 개의 작은 주방용 아날로그 시계와 한 개의 디지털 시계로 이루어진 시한 장치가 복잡한 잠금 장치와 함께 장착되어 있었다.
전기선도 얽혀 있었는데, 이 전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해체하는 사람을 혼동시키기 위해 부착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상당한 공학 지식을 갖추고 공작 기계에 정통한 전문가가 공들여 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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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단서를 찾기 위해, 웰스에게 내려진 지시 사항대로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지시서는 은행에서 돈을 확보한 뒤 차를 타고 인근의 맥도널드 식당으로 오도록 하고 있었다. 식당 입간판 밑 화단의 굵직한 돌 하나에 다음 지시서가 테이프로 붙어 있고, 이 지시서는 다음 장소를 다시 몇 마일 떨어진 거리의 나무 밑 상자에서 찾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웰스가 경찰의 제지를 받은 것은 두 번째 단계인 이 상자를 찾는 도중이었다.
사건 직후 경찰은 근처에서 문제의 상자를 발견했으며, 그 안의 지시에 따라 다시 2마일 가량 떨어진 숲 속에서 다음 지시서가 들어 있어야 할 병을 찾았다. 병은 발견되었지만, 그 안은 비어 있었다. 이 '목숨을 건 보물찾기'는 범인들이 웰스를 지켜보며 단계별로 그에 한 발씩 앞서 예정된 장소로 가서 지시서와 열쇠들을 숨겨 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웰스가 죽고 경찰이 움직인다는 것을 안 범인들이 지시서를 계속 묻어 둘 이유는 없었다. 다시 말해 웰스가 죽은 현장 부근에서 범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보물찾기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웰스가 일하던 피자집을 조사했다. 그 결과 특이한 사실이 두 가지 밝혀졌다. 첫째, 사건 당시 웰스가 입고 있던 옷은 그가 피자 배달을 나갈 때 입은 옷이 아니었다. 웰스는 사망 당시 위에 티셔츠 두 개를 입고 있었다. 속의 티셔츠는 그의 것이었지만, 그 위에 낯선 티셔츠를 하나 더 입고 있었던 것이다. 웰스의 친지들은 모두 이 티셔츠가 웰스의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범인들이 웰스에게 폭탄을 부착할 때 입힌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의문의 티셔츠는 '게스(GUESS)' 로고가 크게 새겨진 것이었다. 마치 'Guess who we are!" 하고 도발적으로 소리치는 듯한 모양이었다.
또 다른 특이한 사실은 그가 피자 배달을 하러 나간 마지막 주문자의 주소였다. 소시지와 페페로니 피자 두 개를 주문한 주문서에 기록된 주소를 따라가 보니, 나타난 것은 집이나 아파트가 아니라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 등성이의 텔레비전 방송 중계탑이었다. 비포장 도로로 올라가야 이를 수 있는 곳이었다. 범인들이 피자를 주문하면서 주소로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중계탑 주변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웰스가 신고 있던 신발의 족적과 그의 차 타이어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과는 별도로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웰스의 사망 직후 현장에 도착한 폭발물 처리반)
(웰스에게 부착되어 있던 실제 목 폭탄 장치의 일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왼쪽)의 은행 강도 및 폭발 사망 사건은 조용한 이 도시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은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에, 그리고 그 다음 날의 조간 신문에 크게 보도되며 지역 사회를 흔들었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지역 신문의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 한 팀이 문제의 피자 배달지인 야산 텔레비전 중계탑 현장을 취재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중계탑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에는 접근 금지를 알리는 노란 색 줄이 둘러쳐 있었다. 증거 유지를 위해 경찰이 봉쇄를 해 둔 것이었다. 낙심하여 주변을 둘러보던 두 사람의 눈에 인근에 있는 집 한 채가 들어왔다. 중계탑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그 집 뒤꼍을 통해 수풀을 헤치고 나가면 중계탑 주변을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벌판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외딴 집 마당에서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멜빵 청바지를 입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두 기자가 인사를 하자 남자는 자신을 빌 로드스타인이라고 소개했다. 로드스타인은 바로 전날 자기 집 뒷산을 경찰이 수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중계탑 현장을 확인하는 데 안달이 났던 취재진은 현장으로 가기 위해 로드스타인의 집 뒤꼍을 이용해도 되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앞서서 길을 인도했다.
세 사람은 빽빽히 자란 풀숲을 헤치고 중계탑 방향으로 15분 가량 나아갔으나, 현장을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데 실패했다. 두 기자는 취재를 포기하고 로드스타인의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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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9세였던 빌 로드스타인(왼쪽)은 평생을 그 지역에서 살아 온 독신 남성이었다. 그는 마치 영문학과 교수처럼 아주 유식한 단어를 써서 우아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말(영어)뿐 아니라 불어와 헤브루어에도 통달한 사람이었다.
로드스타인이 아주 잠깐이나마 언론과 조우하게 된 것은 우연히도 자기 집 뒷산의 중계탑이 웰스 사건과 관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연한 사실을 빼면, 그는 들판의 외딴 집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조용한 삶을 사는 한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겉모습일 뿐, 사실은 아닐 수도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과는 관련 없는 자기 나름의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비밀은 웰스 사건이 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그가 911로 긴급 전화를 하면서 양지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OOOO 거리 XXX 번지의 집 차고에 냉동된 시체가 있소! 냉동고 안에 시체가 있단 말입니다!"
로드스타인은 911로 전화를 걸어 이렇게 신고를 했다. 그가 말한 주소는 다름 아닌 자기 집 주소였다. 경찰이 달려가서 확인해 보니 꽁꽁 언 한 남자의 시체가 로드스타인의 차고 안 냉동고에 들어 있었다. 경찰은 즉시 그를 체포했다.
경찰에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그동안 이 시체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아 왔으며,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서까지 써 두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의 집 책상 서랍에서 그가 썼다는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서 그는 이 얼어붙은 시체가 제임스 로든이며, 자신이 로든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의 죽음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이하게도 그의 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웰스 사건과 관련이 없다."
로드스타인이 제임스 로든을 죽이지 않았다면, 로든의 시체는 어떻게 해서 로드스타인의 집 냉동고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인 8월 중순, 로드스타인은 과거에 여자친구로 사귀었던 매조리 암스트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암스트롱은 당시 함께 살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과 돈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 레밍턴 엽총으로 로든을 쏴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시체를 숨겨 둘 장소가 필요하다며 로드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로드스타인은 과거의 애인을 도와 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10마일 정도 떨어진 암스트롱의 집에 가서 로든의 시체와 살해에 사용된 총을 가져 왔다. 시체는 냉동고에 넣었으며, 엽총은 그 뒤 며칠에 걸쳐 모두 녹여서 작은 금속 조각들로 만든 뒤, 인근 마을 이곳 저곳에 뿌려 흔적을 없앴다. 시체 역시 잘게 갈아서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로든의 시체는 그냥 그렇게 로드스타인의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다섯 주 동안이나 그의 차고에 들어 있는 시체가 무섭기도 했으며, 자신이 시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경우 암스트롱이 어떤 해꼬지를 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가 911로 자진해서 신고를 한 것은 그런 정신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경찰은 로드스타인이 신고를 한 바로 다음 날 매조리 암스트롱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를 제임스 로든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사건은 깨끗하게 끝난 듯 보였다. 로든 살해 사건은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범인이 잡혔으니까. 동거남을 살해한 암스트롱은 재판 끝에, 1년 4개월 뒤인 2005년 1월에 선고 판결을 받았다. 암스트롱측은 살해를 시인했으나, 그녀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걸고 넘어지려 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0년형을 선고했다. 암스트롱은 주립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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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웰스의 목 폭탄 사건은 사건 당시 남은 여러 가지 물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1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 즈음 웰스 사건은 미제 사건인데다 사건의 중요성 때문에 FBI가 담당하고 있었다.
2005년 4월 어느 날, 웰스 사건을 담당한 FBI 수사관에게 펜실베이니아 주 경찰관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화 속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웰스의 목 폭탄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독립된 살인 사건으로 처리되었던 암스트롱의 제임스 로든 살해 사건이, 사실은 웰스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알려졌을까.
얼마 전에 주 경찰관은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교도소를 찾아가 암스트롱을 참고인으로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시체 처리를 도와주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로드스타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유서에 쓴 내용은 모두 자신과 치밀하게 논의한 끝에 작성한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연락을 받은 FBI 수사관들은 즉시 주립 교도소로 달려가 암스트롱을 면담했다. 암스트롱은 사실을 털어 놓는 대가로 조건을 달았다. 그녀가 수감되어 있는 주립 교도소로부터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리 시에 가까운 작은 교도소로 옮겨 준다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주립 교도소 중 일부는 중범죄자들을 수용하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이른바 maximum security 수감 시설이다. 이에 비해 소규모 지역 교도소는 훨씬 통제가 덜하므로 지내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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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왼쪽)은 무서운 여자였다. 그녀가 사람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그녀와 함께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이미 20년 전에,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당시 남자친구에게 총을 여섯 발이나 쏘아 살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며, 어쨌든 배심원이 이를 인정함에 따라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이번에는 암스트롱의 남편이 병원에 실려 왔다. (그 사이에 그녀는 결혼을 했다.) 남편은 뇌출혈로 자연사한 것으로 소견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특별한 부검 조사 없이 자연사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암스트롱의 고등학교 친구들에 따르면 그녀는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 박사로 평판이 자자했으며, 특히 문학, 역사, 법률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편집증과 자기애도 심각한 상태였다. 그녀의 집을 수색하던 경찰이 온 집안에 널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려 180kg의 버터와 320kg의 치즈가 썩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20년 전의 남자친구 살해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될 때, 심리학자들은 그녀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7번이나 밝혔다. 법원에 의해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암스트롱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목 폭탄 사건에 관련되었다면 그런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시간 문제로 생각되었다. 스스로 똑똑한 데 자부심이 있고 자기과시적이며 정서가 불안한 그녀가 그런 엄청나고도 자랑스러운 비밀을 오래 간직할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웰스 사건과 관련한 FBI와의 면담에서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 그녀가 목 폭탄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 모의에 가담하지는 않았다는 것, 다만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주방용 시계들은 자기가 주었다는 것, 그리고 웰스가 은행 강도를 벌일 때 자신이 그 주변에 있었다는 것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담하고 복잡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은행 강도 계획은 대체 누구에 의해 계획되었단 말인가. 암스트롱은 텔레비전 중계탑 부근에 사는 로드스타인이 바로 그 주모자라고 지목했다. 모든 일은 그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는 것이다. 냉동 시체를 신고한 것도 웰스 사건을 서둘러 덮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암스트롱의 진술에서는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인질이 되어 목에 폭탄을 차고, 범인의 지시에 따라 은행 강도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불쌍한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사실 인질이 아니라 범행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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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미궁에 빠졌던 웰스 사건의 미스터리는 암스트롱의 돌연한 자백으로 인해 일순간에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빌 로드스타인을 불러다가 자백만 받으면 모든 일이 종결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로드스타인은 이미 10개월 전, 그러니까 웰스 사건이 발생한 2003년 8월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7월에 림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목 폭탄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맞다면,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것도 완전 범죄라면 완전 범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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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모자로 지목된 사람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수행한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암스트롱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 자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방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수사관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대체로 신뢰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등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탐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네 명으로부터 암스트롱이 웰스 사건의 자세한 세부 사항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드스타인의 집에 시체로 냉동되어 있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로든은 암스트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재소자 동료들에게 떠벌인 데 따르면, 실은 그 역시 은행 강도의 공모자였으며, 강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피자 배달원 웰스의 목에 맞는 고리를 찾기 위해 웰스의 목 둘레를 잰 것은 암스트롱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은 암스트롱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가 웰스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방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모두 참고 증언이었을 뿐, 사건의 전모를 밝히거나 암스트롱을 이 사건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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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말,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피자 배달원 웰스(사망), 중계탑 옆집 로드스타인(사망), 무서운 여자 암스트롱, 그녀의 동거남인 냉동 시체 제임스 로든(사망, 실제 가담 여부는 불명확)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이 사건 모의에 가담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텔레비전 수리공이었다가 마약 판매상으로 변신한 케네스 반스(왼쪽)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상태였다.) 그는 암스트롱의 또다른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남자 관계도 상당히 복잡한 아줌마가 아닐 수 없다.
반스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뒤, 주변의 몇 사람에게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내부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한 사람은 그의 처남이었다. 반스는 암스트롱이 자백한 사건 진술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웰스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반스를 데려다 놓고, 웰스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입증되면 형기가 대폭 연장될 것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하여 압박했다. 반스는 형기 연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데 동의했다.
반스의 진술은 암스트롱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났다. 반스는 사건의 모든 계획이 다름 아닌 암스트롱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이 범행을 계획하고 주변의 남자들을 총동원해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암스트롱은 자기 아버지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탓에, 집이고 뭐고 다 날리고 자기에게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고 한다. 그런 일을 막는 방법은 유산을 바로 상속받는 길밖에 없고, 또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가 빨리 죽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오랜 친구이자 마약상인 반스에게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은행 강도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반스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었으며, 수사관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한 정황과 잘 맞았다. 웰스 사건은 2년 반 만에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다음해인 2006년 2월, FBI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그녀의 변호사를 접견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으므로 그녀를 웰스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하겠다고 통지했다. 암스트롱은 불같이 화를 내며 펄펄 뛰었으나, 특이하게도 수사에 협조하는 데에 동의했다. 현장 검증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이리 시 여러 곳에서 벌어진 현장 검증에서 암스트롱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 자신이 있던 곳과 사건 관련 장소들을 정확히 지목했다. 범행 장소를 차량으로 이동하던 도중, 암스트롱은 형을 경감해 주겠다는 증서를 써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도 그녀를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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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스 사건이 벌어진 지 4년 만인 2007년 7월, 연방 검찰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지부의 검사는 마침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암스트롱과 반스가 사건 관련자로 처벌되리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공모자로 확인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하나는 로드스타인이고 다른 하나는 피자 배달원 웰스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4년 동안 수천 회의 면담과 조사를 통해, 그 동안 불쌍한 희생자로 알려진 웰스가 범행 모의의 초기부터 가담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웰스는 은행 강도 계획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인질 역할을 하기로 하는 데 스스로 동의했다고 한다. 범행 지시서를 들고 보물찾기 흉내를 내다가 돈을 다른 공범에게 전해주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보물찾기는 물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장치였다. 범행이 끝난 뒤 웰스는 인질로 간주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것이었다.
그러나 웰스는 범행 계획이 진행되면서 점점 주저하기 시작했으며 소극적으로 되어 갔다고 한다. 그가 손을 떼고 싶어 한 결정적인 계기는 목 폭탄이었다. 맨 처음 웰스가 인질 역할에 동의한 것은 목 폭탄을 가짜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일 이 폭탄은 진짜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보였던 보물찾기는 실제로 웰스의 목숨이 걸린 죽음의 레이스로 변질되었다. 웰스는 이러한 계획 변경에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자기 목에 진짜 폭탄을 달고 째깍째깍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은행 강도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검찰의 기자회견장에는 웰스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검찰이 발표를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고함을 치며 항의했다. 웰스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검찰 발표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 발표에는 대답되지 않은 의문이 여럿 있었다. 웰스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목숨이 실제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 당일 태연히 범행을 수행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주모자로 지목된 암스트롱의 정신 상태로 볼 때, 그녀가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범행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난 뒤 추가 사항을 발표할 때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추가 발표에서, 웰스의 보물찾기가 모조리 가짜였던 것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폭탄을 제거하거나 해체할 수 있는 어떤 열쇠나 번호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폭탄은 일단 장치된 이상 무조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웰스는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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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마약상 반스는 웰스 사건을 놓고 벌어진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범행 공모와 불법 무기 혐의로 기소되어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 발표에서 남았던 의문점은 함께 진행되던 암스트롱의 재판 과정에서 깨끗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정신 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밀고 당기는 씨름 끝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재판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암(腺癌) 진단이 나왔다. 법원은 그녀가 정확한 의학적 진단을 받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작년인 2010년 8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때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암스트롱의 병세에 대한 의사의 최종 진단이 법원에 전달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3~7년 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검찰은 재판을 서둘렀으며, 2010년 10월에 재판이 속개되기로 일정이 잡혔다.
암스트롱을 기소하는 검찰의 최대이자 유일한 증인은 공모자인 마약상 반스였다. 반스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찰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반스는, 은행 강도 계획의 총지휘자가 암스트롱이며, 그녀가 로드스타인과 웰스를 끌어들여 계획에 참여시켰다고 증언했다.
로드스타인과 반스는 암스트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다(전 애인과 오랜 친구). 피자 배달원 웰스는? 그는 반스의 친구였다. 웰스는 사건 당시 한 매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반스로부터 마약을 사서 매춘부에게 주면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웰스는 반스에게 마약 대금 빚을 지고 있었다. 그도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웰스는 폭탄이 가짜라고 생각하고 범행 모의에 참가했다. 그가 폭탄이 진짜임을 알게 된 것은 사건 당일 피자 배달을 핑계로 하여 중계탑에 나가 다른 공범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공범들과 싸우며 달아나려 했으나, 누군가가 총을 겨누어 그를 제지하고 결국 목에 폭탄을 채워 버렸다.
반스가 이런 증언을 하는 동안, 피고석에 있던 암스트롱은 몇 번이나 "거짓말 마라!" 하고 소리쳤다. 재판 8일째 되는 날, 드디어 피고 암스트롱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이틀 동안 5시간 30분에 걸친 발언을 하면서 검찰을 비웃고 조롱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장광설이 튀어나왔으며, 울기도 하고 고함치기도 했다. 판사는 50회 이상 그녀의 발언을 제지해야 했다.
암스트롱의 주장은 자신이 주모자가 아닌 단순 협조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전모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계속 된 그녀의 긴 발언 동안 피자 배달원 웰스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나는 브라이언 웰스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어요. 사건 당일 주변에 있었지만 누가 강도를 벌이는지는 몰랐어요. 나는 그 이름을 그가 죽던 날 뉴스에서 처음 들었단 말이요."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11명과 남성 5명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11시간의 장고 끝에, 은행 무장 강도, 범죄 공모, 범죄에 폭발 장치의 사용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영화 같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몇 년 동안 지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암스트롱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녀는 자동으로 종신형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를 진단했던 의료진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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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끝났다. 수사도 끝났고 재판도 형량이 확정된 최종 선고만 남겨 놓고 있으므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FBI의 범죄 수사 요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뒤 대학에서 범죄학을 가르치는 짐 피셔가 그다. 그는 피자 배달원이 은행 강도를 벌이다 목 밑의 폭탄이 터져 길 위에서 죽었다는 엽기적인 소식을 들은 이래,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치밀하게 추적해 오고 있었다. 그동안 보도된 모든 기사를 분석하고 FBI가 발표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왔다. 그 결과 피셔는, 검찰의 발표와는 달리 매조리 암스트롱이 이 범죄의 총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셔가 주목한 것은 사건 직후 FBI의 행동분석팀에서 목 폭탄 계획을 설계한 범인에 대해 분석해 내 놓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은행 강도 사건과 전혀 다르며, 여러 정황과 근거들로 볼 때 범인은 여럿의 범행 동기를 가졌음에 틀림없고, 그 중에서 돈은 주요 동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은행 강도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은 웰스가 실제로 돈을 가지고 나오는지, 그 돈이 자신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은행 강도짓은 그저 경찰이 웰스가 소지한 지시서에 제시된 대로 허겁지겁 장소를 옮겨 가며 '보물찾기'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역할만을 했으리라고 분석됐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아버지를 죽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한 것으로 단정한 검찰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암스트롱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FBI의 분석 보고서는 범인이 기계를 다루는 데 능하고 과학 지식이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매우 검소한 성향의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셔가 보기에 중계탑 옆에 살던 빌 로드스타인은 이런 묘사에 정확히 맞았다. 그는 폭탄을 만들 만큼의 지식이 있었으며 (검찰도 폭탄의 실제 제조자는 로드스타인이라고 인정한다), 범행 지시서에 묘사된 것과 같은 번듯한 고급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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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교수에 따르면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경찰을 가지고 놀았다. 웰스에게 넘겨 준 범행 지시서를 통해 경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지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추적한 끝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미궁에 빠지게 만들었다. 냉동된 시체를 신고한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아무 것도 숨길 게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며, 자기과시형 떠벌이 공범자 암스트롱을 교도소에 처넣음으로써 웰스 사건이 쉽게 누설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암스트롱 재판의 최후 신문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치밀하게 모의하고 공들여 수행했으나 결국 무참하게 실패하고 만 범죄극"이라고 규정했다. 만일 이 범죄의 동기가 돈을 강탈해 내는 것이었다면 검찰의 규정이 맞다. 그러나 다른 동기가 있다면?
피셔 교수는 로드스타인은 처음부터 돈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명민함을 과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수완가였으나 인생에서 실패하고 은둔하여 사는 사람으로서 로드스타인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한 드라마가 방송의 톱 뉴스가 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꿈꾸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 공범을 구성했으며, 그들에게도 범죄의 일부 측면만을 알려주어 전체 구도를 모르도록 했다.
피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로드스타인은 웰스 사건으로 수사도 받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죠. 완벽하게 경찰과 세상을 속인 겁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이 작자입니다.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범죄 전문가 피셔 교수의 추정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암스트롱의 주장도 피셔의 추론에 가깝지만, 적어도 검찰과 배심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과연 실패한 천재 로드스타인이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을까.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암스트롱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것일까. 로드스타인이 죽어 버렸으므로 사실 여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종신형이 선고될 것이 확실한 암스트롱에 대한 최종 선고 공판은 지금으로부터 2주 뒤인 2011년 2월28일에 이리 시 지역 법원에서 열리게 된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은 피자 배달원 브라이언 웰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 중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한편 범행의 공모자이면서, 한편 피해자다. 사건 직후, 웰스의 건너집에 사는 니버 벨은 그가 은행 강도를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나 이웃이 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죠. 그는 천성이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물질적인 데는 관심도 없었고요.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이것은 그가 범행에 가담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나온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30년 동안 피자 배달을 하며 이렇게 조용하고 성실한 이웃으로 살아 왔다. 그가 목에 폭탄을 매단 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작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범죄 미스터리 드라마는 이제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문 하나를 여전히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 참고 자료: <와이어드>, CBS, Cleveland.com, <USA 투데이>, Wiki를 비롯한 언론 기사와 위키 항목들 ※ 이미지: 위의 기사들(대부분 이리 시 법원이나 경찰 당국이 제공한 사진들)
조만간 영화로 볼 수 있을 듯
1980년대를 방환하는 우리들의 추악한 공범의식 '살인의 추억'정성일의 영화세상 정성일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잔치는 끝났다고 푸념한 지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80년대가 돌아오고 있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시대가 우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변방에서 80년대를 이야기할 때만 해도 우리들은 깡패새끼들만을 보았지, 그 풍경을 보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서울 변두리의 80년대를 다룬 「해적, 디스코 왕이 되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80년대 ‘고삐리’들의 연애활극 「품행 제로」와 80년대 ‘중삐리’들의 음담패설 「몽정기」가 등장했다. 1982년 11월 14일 맞아죽은 권투선수 김득구가 「챔피온」으로 부활하고, 거의 동시에 서울 가서 성공하겠다고 권투하러 떠난 80년대 섬 소년들 이야기 「남자, 태어나다」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삼청교육대 러브스토리’라는 기괴한 ‘純正哀歡劇(?)’ 「나비」와 함께 80년대 미해결 사건인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지금 상영 중이다. 1980년대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 그러니까 80년대가 지금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는 중이다. 때로는 낄낄대면서, 때로는 음란하게, 때로는 비장한 말투로, 때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지금 다시 말해야 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는 그 사건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하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유명한 이야기. 범인은 현장에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1987년 10월 26일. 경기도 화성 논밭 근처의 농수로에서 강간당한 다음 브래지어로 목을 졸리고 스타킹으로 손발이 묶인 채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쓴 이향숙의 시체가 발견된다(이하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본 다음에 평을 읽으실 것). 동네 경찰서의 박두만 형사(송강호)와 조 형사는 대충 사건 조서를 꾸민 다음 이향숙을 쫓아다닌 동네 고기집 바보 막내 백광호를 ‘感으로’ 체포한다. 그리고는 지하실로 데려와 겁도 주고 달래기도 하면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는다. 서울에서 서태윤 형사(김상경)가 파견되어 내려오고, 그는 백광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에 의한 추리로’ 안다. 둘이 범인 여부를 놓고 다투는 사이에 새로운 희생자가 발견되고, 이미 벌어진 범행의 예전 희생자도 찾아낸다. 서장이 경질되고, 새로운 수사반장(송재호)이 내려온다. 박두만 형사는 무당을 찾아가서 부적도 받아오고, 나름대로 과학적 추리를 해서 동네 남자들 중에서 무모증(無毛症)인 놈이 범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범인은 매번 비오는 날 라디오 방송으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신청한 다음 빨간 우산을 쓰고 가는 여인을 골라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수건돌리기 놀이’ 같은 재미 함정수사도 벌이지만, 소득이 없는 가운데 범행 장소에서 ‘빨간 팬티를 입고 딸딸이를 치던’ 동네 공사장 인부 조병순을 잡아 다시 한 번 족치면서 범행 자백을 받던 중 또 범행이 일어난다. 범인에게 강간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언덕녀’로부터 “범인의 손이 곱다”는 진술을 받아낸 다음 라디오 방송국에서 신청곡 엽서의 주소를 찾아내 “손이 고운” 용의자 박현규(박해일)를 검거한다. 박현규는 완강히 범죄를 부인하지만, 서태윤 형사와 박두만 형사가 보기에 그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범인”이다. 희생자에게서 발견된 정액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 검사 의뢰를 보내고 박현규를 감시하다가 서태윤 형사는 잠시 깜빡 존다. 그 두 시간 사이에 한 여고생이 다시 살해당한다. 더 이상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박현규를 찾아가 서태윤 형사가 총을 들이대고 자백하라고 외치는데 미국에서 결과가 왔다고 박두만 형사가 달려온다. 결과는 두 사람의 정액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3년, 아직 사건은 미해결로 남아 있다. 다소 길긴 하지만 이 영화의 줄거리는 꼼꼼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봉준호가 화성에 내려가서 이 사건을 직접 취재했(다고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나는 「살인의 추억」에서 실제 사건의 어느 부분이 극적으로 허구인지 알지 못하며, 어느 인물이 극중 인물인지 모르며, 미안하지만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지 못했다. 미해결 사건을 영화로 담은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대목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투적으로 말하면 송강호는 거의 원맨쇼에 가까우며, 많은 대목들은 봉준호가 지나치게 텔레비전을 열심히 본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만큼 영화적으로 서투르다.(특히 추적장면들은 유치하게도 음악소리만 시끄럽다. 또한 도입부의 롱테이크는 겉멋이다) 시나리오는 산만하고, 인물들은 차례를 기다려 적당한 대목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물러난다. 「살인의 추억」은 ‘그냥’ 재미있다. 그러나 그 재미는 일종의 수건돌리기이다. 그래서 내 뒤에 수건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놀이다. 수건돌리기가 불러일으키는 술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내 뒤의 수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놀이 자체에 있다. 하지만 놀이는 즐겁고 수건만이 괴로워진다. 수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뒤에 놓일 것이다. 수건이 놓이면 당신은 범인이다. 「살인의 추억」은 가까스로 술래에서 빠져 나온 당신을 다시 그 자리에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것은 봉준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80년대를 끌어들이는 순간 그 시대의 지식이 만들어내는 위장술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소도구나 미장센으로 활용된 80년대 텔레비전 연속극 「수사반장」이나 ‘나이스’ 운동화, 모나미 볼펜, 등화관제, 전두환이 이 동네를 지나간다니까 동원된 한복차림의 여고생들, 그리고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부천 경찰서 성(性)고문 경찰 문귀동과 같은 대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내가 궁금한 것은 1987년에서 1991년에 걸친 미해결 사건의 이야기, 그러니까 어떻게 풀어내도 결국에는 불구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 그래서 결론이 없는 (정말 벌어진 현실 속의) 사건을 끌어안고 어떻게 해서든 그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고 가야 하는 안간힘 때문에 가져야만 되는 거짓된 외양의 그럴 듯함이 무엇을 기만하고, 무엇을 희생시키면서 그 대가로 무엇을 얻어내는 과정을 밟아 나가느냐는 것이다. 자꾸만 이야기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주인공들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범행은 계속 되고 시체는 쌓여가는데, 이야기는 진척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같은 이야기의 끝없는 변주이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니 사실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살인의 추억」을 가장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범인이 누구인지는 (또는 아닌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는 그가 모든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첫 번째 범행만을 저지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걸 왜 알 수 없냐면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박현규를 범인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으로 끝을 낸다. 영화는 범인이라고 지목을 하는데, 이야기는 아니라고 버틴다. 봉준호는 그 모순의 인과관계를 끝내 설명하지 못한다. 박현규는 비만 오면 “애국가 듣고 조회하는 것처럼”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라디오에 신청한 다음 강간 살인하러 밤에 범행장소로 ‘출근하는’ 미친놈이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점이 이 영화에서 정말 무서운 대목이다. 또는 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동의가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범인의 범행동기를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범인을 이해하는 대신 그냥 “미친 사이코”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왜? 그걸 이 영화는 슬쩍 생략한다. 범행 동기를 알 수 없으니 끝내 범인을 잡기는 틀린 일이다. 그런데도 박두만 형사는 일단 잡아다가 때리고 달래면서 범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또는 서태윤 형사는 자기가 선택한 증거를 통한 자기의 추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백광호는 자기가 범인을 보았다고 말한 다음 기찻길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조병순은 ‘통닭구이’ 고문을 받은 다음 시키는 대로 범행을 자백한다. 박현규는 끝내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또는 못한다. 여기에는 범인(이라고 자백을 강요받은 채 희생당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이 깨끗하게 지워져 있다. 오직 추적하는 형사들의 시선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증거물만으로 추리를 하고 범인을 호명한다. 호명당하면 그때부터 범인이다. 그것이 80년대를 기억하는 우리들의 추억의 수사학이다. 우리들은 80년대에 대해서 마치 형사와도 같은 자리에 가서 호명한다. 거기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나, 죽은 자들의 묘지 앞에서의 죄의식 따위는 처음부터 없다. 무언가 잘못이 있지만, 그 잘못은 범인이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이해할 생각은 없다. 그저 호명하고, 죄를 자백하라고 외치면 된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대상, 끝내 잡을 수 없는 대상과의 숨바꼭질 속에서 ‘아무나’(이 말이 중요하다) 거짓범인으로 몰아서 때리고 고문하던 가해자는 갑자기 희생자가 되고, 희생자들은 위증을 한 것으로 몰린다. 정작 범행을 저지른 그 대상이 완전히 탈락되어 있는 기만적인 속임수의 드라마는 텅 빈 구멍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정말 잡히지 않는 범인은 80년대라는 구멍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 걸려들 것이다. 우리 시대의 관객들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는 것은 동시에 80년대에 걸려 넘어진 채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내라는 요구에 대한 집단적인 비웃음이다. 2003년은 80년대에 대해서 완전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누가 범인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도 알 수 없게 뒤섞인 이 무시무시한 공범의 책임전가 시대에 갑자기 80년대의 범인을 찾자는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에 대해 집단적으로 히스테릭한 웃음을 터트리는 중이다. 완전범죄를 방관한 우리의 지리멸렬함 그러니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중으로 읽혀야 한다. 형사를 그만 두고 대리점을 하는 박두만은 2003년에 이 영화의 첫 장면, 이향숙이 시체로 발견된 농수로에 다시 찾아간다. 그곳을 보고 있는데 한 초등학생 소녀가 와서 이야기한다. “참, 이상하다. 어제는 다른 아저씨가 와서 들여다보더니 옛날에 한 일이 생각나서 온 것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아직도 활개치는 범인이 와서 들여다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서태윤이 들린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영화를 곧이곧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가 남아 있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을 잡아야 하는 놀이는 아직도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재수 없게도 비오는 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흥얼거리면서 걸어가는데 당신 앞에 빨간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여인이 있다면 당신은 범인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 강간할 의지가 없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 자리에 하필이면 마침 도착한 당신이 잘못이다. 결과가 원인을 붙잡으러 달려갈 때, 당신은 저지르지 않은 죄의 범인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이 순환의 고리에 누군가를 대신 밀어넣어야 할 것이다. 어느 새 당신은 범인을 잡는다는 미명을 앞세워 가해자의 자리에 가 있다. 당신은 자꾸만 형사의 자리에 가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은 당신이 80년대의 공범자라는 그 책임의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이 따분하고 뻔한 영화가 어떤 대목에서 찬물을 끼얹듯 섬뜩해지는 이유는 그 역설적인 책임회피를 통해 우리들의 추악한 공범의식을 쳐다보게 만드는 순간이다. 「살인의 추억」을 보는 재미는 80년대에 대해서 완전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어둠 속에 모여 앉아 즐겁게 추억을 더듬는 그 공범의식의 음란한 은밀함이다. 참으로 지리멸렬하게도 우리들의 역사는 진행된다. -------------------------------------------------------- 정성일 제 204 호 2003 년 6 월 발행 ⓒ 디지털말
가령 혹스 영화에서 '물건을 주고 받음'은 인물들의 친밀한 관계를 설명한다. 혹스는 구구절절한 대사나 설명 없이 이렇듯 영화적인 문법들을 개발했다. [레드 리버]는 알기 쉽게 말하면 웨스턴판 [지옥의 묵시록]이며 웨스턴 버전의 [모비 딕]이다. 기회가 된다면 [레드 리버]의 리뷰 역시 네오이마주에 올릴 예정이다. 그럼 이 글의 영화 선생님들이신 존 카펜터와 리처드 쉬켈의 하워드 혹스 강의를 들어보자.[# 89분경] 펜터 : 악당이 다가올 때 존 웨인도 움직여서 빨리 총을 잡으려고 해요. 그런데 악당이 총을 꺼냅니다. 꼼짝 못하게 돼죠. 존 웨인은 길거리 한가운데서 인질로 잡힌 겁니다. 총 벨트를 풉니다. 이제 리키 넬슨이 시선을 끌려고 준비를 합니다. 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게 무척 깔끔해요. 리키가 밖으로 나가는 동안 창문으로 화분을 던집니다..... 여기서 멋진 총격전이 나옵니다. 깨고 던지고 발사하죠. 멋진 장면이에요. 당황한 틈에 악당들을 물리칩니다. 존이 멀리서 도망가는 남자를 쏩니다. 존이 말에 오를 때 보면 누가 말을 잡아줘요.
[# 101분경]
카펜터 : 이건 ‘리오 브라보’에서 유명한 장면이에요. 대사가 많죠. 듀드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신이에요. 리키 넬슨이 선서를 하고 딘은 자신이 쓸모 없고 일을 할 수 없다고 느껴요. 그래서 술을 마시려는데 밖에서 ‘드구에요(죽음의 노래)’가 들리자 딘은 바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수수께끼 같은 방법으로 옛 기억을 다시 더듬으며 왜 이렇게 됐는지 되돌아보고 다시 용기를 얻습니다. 영웅이 재기하는 모습은 혹스 영화에서 자주 나옵니다. 죽을만한 일을 겪지만 다시 일어서는 길을 찾고 돌아왔을 때는 동료들이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술을 마시려다가 노래를 듣습니다. 매우 깔끔하게 바로 술을 병에 다시 붓습니다. 여기서도 대사가 전혀 없어요. 결국 본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문을 닫지 말라고 하죠. 굉장한 순간이에요.
[# 120분경]
쉬켈 : 한번은 존 웨인이 혹스에게 물어봤대요. [리오 브라보]는 어떤 영화냐고요. 하워드 혹스는, 이 영화엔 아주 중요한 여섯 장면만이 있다고 했죠. 마치 섬에서 섬으로 수영하는 것과 같다고요. 나머지 장면들은 마지막 대 장면에 이르기까지 A 지점에서 B, C 지점으로 이동하는 거라고 했어요. 감독적인 면에서 웨인은 혹스에게 이렇게 물었죠. “이게 그 여섯 장면에 들어가요 ? 아니면 빨리 지나가는 장면에 속해요?” 특히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매우 그런 식의 구성이죠. 좋은 대사로 둘러싸여 액션이라는 섬으로 이루어졌어요. 흥미롭고 좋은 대사들이 부차적인 줄거리를 발전시켜줍니다. 어떤 점에서는 좋은 영화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해 하워드 자신이 고전적인 방법을 운운했다면 [리오 브라보]는 그 주류에 속하는 고전 영화죠. 이들 장면으로 분리되는 대여섯 액션 부분이 한편으로는 좋은 코미디가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로맨스가 뒷받침해주고 있어요. 멋진 기능을 가진 혹스의 기계라고 할 수 있죠.
[# 124분경]
카펜터 : 혹스와 디미트리 디옴킨의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에요. 단순한 시퀀스지만 디옴킨의 음악이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거래 장면은 일본 영화에서 빌려온 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혹스가 거래 장면을 다른 영화에서 봤는진 모르겠군요.
카펜터 : 이제 가장 훌륭한 액션 시퀀스를 보시겠습니다. 아주 훌륭하죠. 재미있고, 긴장하게 만들죠. 이제 모두가 모입니다. 웨인과 리키 넬슨, 딘 마틴, 월터 브래넌이 재결합하는 거죠. 혹스는 재미있다고 여겼어요. 모든 동선은 혹스가 짰어요. 모든 등장 인물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건물의 설계도처럼 미리 머리 속에 그린 거죠. 창문가에 자리를 잡으면서 혹스는 관객이 봐야 할 지점까지 이끌어줍니다. 주인공들은 헛간에 있고 길 건너엔 딘 마틴이 있죠. 모든 게 관객을 위해 다 짜여졌어요. 마치 이 지역의 지도를 머리 위에서 보는 것 같죠. 혹스는 이러한 장면을 단순하고 격조 있게 감독했어요. 혹스의 비주얼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종종 무시되곤 하는데요. 많은 감독들은 장면을 찍고 카메라 각도의 사용법으로 시퀀스가 얼마나 흥미롭고 훌륭한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법을 들어보면 아주 단순하게 감독한다고 하죠. 클린트가 보기에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많은 거죠. 혹스도 거의 같은 식이에요. 그의 카메라는 항상 제때 적절한 곳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제 가까운 숏으로 갈지 이동 숏으로 갈지...
쉬켈 : 이 영화의 진짜 가치는 대사와 줄거리 속의 숨은 뜻에 있습니다. 보도 기사에 따르면 웨인은 앤지와의 러브 신에 많이 긴장했다고 해요. 물론 둘은 친했지만요. 몇몇 비평가들은 앤지 디킨슨이 여배우가 갖춰야 할 모든 걸 다 갖췄다고 했죠.
카펜터 : [리오 브라보]는 재미로 가득 찬 영화죠. 유머가 있고 등장 인물도 재미있어요. 고전적 제작방법에 근거했죠. 30년대와 40년대식을 빌려서 50년대의 칼라로 업데이트되었어요. 액션을 비롯해 모든게 들어 있죠. [리오 브라보]는 제가 생각할 때 최고의 서부영화입니다. [레드 리버]나 [수색자]처럼 심오하지는 않죠. 아마 [수색자]에서 웨인의 연기는 최고일 겁니다. [레드 리버]에서 웨인의 연기는 보다 현실적이면서 덜 친근하죠.
"만일 거장이라는 말이 현대영화 안에서 아직도 성립한다면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이름 중의 한 사람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일 것이다. 이 이름을 나로서는 무조건 긍정하고 싶다. 물론 이스트우드가 존 포드에 필적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앤소니 만이 영화사에서 해낸 위대함을 우리 시대에 기적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용서받지 못한 자]는 [서부의 사나이]에 비견할 만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랜 토리노]를 보았을 때 그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생전에 연출하는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을 보는 것 같았다, 라고 쉽게 말해버렸다. 그런 다음 나는 나의 동료들과 함께 이스트우드의 최고 걸작은 결국 무엇인가, 라는 내기를 하였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간단하게 다음 영화를 만들어버렸다. 이 말의 방점. 그저 간단하게. 올해 80살. 거장의 그 사뿐하도록 가벼운 발걸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때 나는 '유령' 이스트우드의 포스트 '그랜 토리노' 영화들을 생각해야만 했다. [인빅터스]는 내가 감히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저 간단하다는 것이다. 다른 영화들이 너무나 복잡한(그저 복잡하기만 한!) 편집과 과장된(그래서 차마 보기 괴로운!) 연기와 소란스러운(너무 시끄러워서 노이즈에 가까운!) 음악으로 영화의 감각기관을 망쳐버리고 있을 때 이스트우드는 거의 기적처럼 거기 카메라가 있으면 영화가 성립되었다. 그것도 너무 아름답고 우아하게 창조의 선을 연결하면서 그 모든 것이 당연하게 비전이 된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스트우드가 세상을 찍으면 영화가 된다. 오늘날 이런 영화는 이스트우드가 아니라면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인용한 글은 정성일의 [정성일의 영화순정고백: 두 번째 이야기]에서 글의 일부분을 옮겨 놓은 것이다(전문이 궁금한 분은 다음의 두 편의 글을 읽으면 된다. [정성일의 영화순정고백: 두 번째 이야기(1),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2065450
[문화칼럼] 아이돌을 공감하는 ‘돌봄의 정서’ / 허문영[한겨레] 얼마 전 영화를 공부하는 한 대학생과 아이돌 스타에 관해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그와 친구들은 동방신기의 해체를 애통해했고, 보아의 귀환을 반겼으며, 2NE1의 신곡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들은 영화와 예술에 대한 지적 관심이 높은 사람들인데다 20대 중반의 나이이기 때문에, 나는 이 사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 의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에는 돌봄의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돌봄의 정서? 그의 설명은 이랬다.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경유하는지, 그리고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무서운 긴장과 훈련을 해야 하는지 그와 그의 친구들은 잘 알고 있다. 그 힘겨운 과정을 버텨내고 아이돌이 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해낼 때, 열광 이전에 일종의 안도와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세대적인 동질감과 연관된 돌봄의 정서가 그들 세대에서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아이돌에 대한 그들의 호의는 소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합적인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먼저, 그 돌봄의 정서에는 일종의 포기가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아이돌을 길러내는 거대 연예기획사들, 그들의 기획을 추동하는 연예산업의 작동방식, 그 연예산업을 자본의 논리로 일원화하는 배후의 시스템 전체를 일종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회의하지 않는 것이다. 구세대가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질문, 예컨대 1980년대에 들국화, 신촌블루스, 시인과 촌장,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장필순을 배출한 동아기획의 후예가 왜 2010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 같은 질문이 포기된 곳에서, 개별적 생존에 대한 절박한 염려만이 메아리친다. 이 염려가 우애에 가까운 연민을 낳는 게 아닐까. 혹은 이것이 ‘슈퍼스타K’가 주는 감동의 바탕을 이루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그 돌봄의 정서가 작동하기 위해선 아이돌과 ‘나’의 유전적 사회적 불평등이 끔찍한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유복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대중매체로 접하는 아이돌은 훌륭한 인격과 재능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우월한’ 유전자의 소유자로 비친다. 문제는 그들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걸쳐 있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세대가 그 나이였을 때, 우리의 우상은 산울림이거나 조용필이거나 들국화였다. 그 우상들은 대개 어린 우리가 우러러보기만 하면 되는 윗세대였고 성숙한 장인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대부분 육체적으로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자신과 같은 세대가 우월한 유전자와 화려한 사회적 지위의 우상으로 등극할 때, 그들을 바라보는 10대의 마음속에는 어떤 요동이 치고 있을까. 더구나 그가 평범한 유전자와 지능과 재능의 소유자라면 그의 아이돌에 대한 동경 속에는 어떤 고통이 도사리고 있을까. 그 세대의 대부분을 차지할 평범한 10대가 아이돌을 거의 매일 접하면서 겪을지 모를 마음의 동요와 통증을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리가 전혀 체험하지 못한 우울을 그들이 겪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도리밖에 없다. 나는 돌봄의 정서를 말한 그 학생과는 다르게 아이돌, 특히 어린 걸그룹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내게 그 세대에 속한 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 한겨레21 구독]

지난해 나의 ‘올해의 영화’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엉클 분미>이다. 일부에서는 이미 본 아핏차퐁의 이전 영화를 내세우면서 그의 영화가 진부해졌다는 견해도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가 그의 가장 창의적인 영화는 아니다. (가장 창의적인 건 그의 데뷔작 <정오의 이상한 물체>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만들어진 그의 영화중에서 가장 성숙한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아핏차퐁은 21세기 영화의 무대에 갑자기 나타났고, 종종 두려운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의 현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사유의 능력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종종 절단시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확장시켜나간다기보다는 그 힘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선회시켜나가는 쪽을 택했다. 새로운 배치. 불연속의 계열. 정글은 새로운 영화-영토가 되었고, 영화는 인간성의 시간에 대해서 새로운 질문의 방법을 획득하였다. 경험한 적이 없는 영화 안의 시간의 선. 그러나 나는 항상 아핏처퐁의 영화를 볼 때마다 무언가, 어디에선가, 아이디어 단계에서 머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은 그가 영화에 대해서 미숙하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엉클 분미>에서 그는 마치 그 질문을 의식한 것처럼 서로 상이한 항의 쇼트들을 일사불란하게 펼쳐내고 다시 접은 다음 매우 두텁게 고정점을 마름질하였다. 이 영화는 아핏차퐁의 두 번째 데뷔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
홍상수의 열 번째 영화 <하하하>는 내 생각에 <극장전>과 함께 그의 영화중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이다. 물론 지난해에는 <옥희의 영화>도 있었다. 동료들 중에는 이쪽을 더 지지하기도 한다. 그 견해를 대표하는 사람은 이동진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옥희의 영화>가 파토스를 이용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불균질 하다. 그건 의도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종종 인물들이 완전히 선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린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 선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 영화는 지나치게 전략적이 된다. 하지만 <하하하>는 더 할 나위 없이 자유롭다. 홍상수는 처음 시작할 때 구조 안의 무의미와 맞붙어 싸웠다. 의미와의 이 무시무시한 싸움. 그는 구조 안에서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총체적인 효과와 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내적인 규칙들이 사실상 인간적인 놀이의 기만임을 끌어내기 위해 구조자체를 조롱하는 쪽으로 밀고 나아갔다. 그러나 그의 냉소적 이성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갑자기 중단되었다. 그 이상한 조짐은 이미 기괴한 방식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패닝(<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과 불쑥 끼어드는 줌(<극장전>)은 그의 영화 안의 엔트로피가 되었다. 물론 구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홍상수는 빗장 풀린 구조가 되었을 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관계들 사이의 진동들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마치 즉흥연주를 내세운 악기들 사이의 음향과 리듬을 따라가는 것처럼 음악적이 되어갔다. <하하하>는 둘이 주고받는 대화로 시작해서 마치 악기의 편성을 늘려가는 것처럼 인물들이 차례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마치 악기의 성질을 고르듯이 배우들의 용례와 역량을 알기 위해서 이리저리 건드려본다. 종잡을 수 없는 벡터들. 그 안에서 배우들은 전례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문소리는 이제까지 그녀의 모든 연기 중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준상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인물의 발견이고, 김상경은 더 풍요로워졌다. 나는 김강우를 여기서 처음 그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느슨해졌고, 홍상수는 그 안에서 그 어떤 일관성도 강조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에만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하하하>는 무엇보다도 그 리듬이 아름다운 영화이다. |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은 별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미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찍은 다음이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는 항상 놀랄만한 영화를 만들어낸 다음 거의 기대를 포기할 때까지 실망스러운 영화를 줄기차게 만들어내곤 했다. 심지어 그게 고의적으로 부리는 심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레이디 킬러>와 <참을 수 없는 사랑>은 심지어 끔찍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습을 하듯이 슬그머니 걸작을 내놓곤 하였다. 이를테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이게 종종 단지 좋은 정도가 아니라 매번 그들의 ‘최고’ 걸작의 자리를 갈아치울 정도가 될 때에는 아찔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키곤 하였다. 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본 다음 거의 즉각적으로 아, 이건 굉장하다, 는 감흥에 사로잡혔다. 토미 리 존스는 마치 이 영화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저 간단한 음향과 단순한 편집만으로도 안톤 쉬거가 뒤쫓아 오는 장면은 거의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그 영화적 순간들은 너무 간단해서 혹시 마술을 부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다음 <번 애프터 리딩>을 보면서 너무 실망스러워 한숨을 내쉬면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탄식을 하였다. 문제는 얼마나 이 실망이 오래 갈까, 라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시리어스 맨>을 그냥 코엔 형제의 소품 정도로만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렸다. 코엔 형제는 1960년대 미국의 노이로제를 괴이한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이 영화는 마치 자신이 1960년대에 쓰여진 대중소설처럼 위장하고 전개된다. 랩비들의 프롤로그는 아포리즘이거나, 매거핀이거나, 혹은 패러독스의 알레고리일 것이다. 1960년대라는 불안 안으로 들어간다. 쿠바사태. 케네디 암살, 베트남전, 제퍼슨 에어플레인,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의 시위, 우드스톡. 이때 코엔 형제는 어떤 것도 지칭하지 않는다. 그 대신 무언가 지금 매우 위험한 그 무언가에 어떤 저지선을 넘어서서 지나치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너무 흔한 일상적 대화와 평범한 사건들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무언가 회복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건의 기다림. <시리어스 맨>은 그 기다림만으로 한편의 영화 안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마주보는 것은 미국 성조기를 날려버리고 상징의 네트워크를 찢어버릴 것처럼 닥쳐오는 거대한 토네이도의 모습이다. 실재와의 대면. 이 알 수 없는 황홀감. 이제 <시리어스 맨>을 보았으니 실망을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심지어 (이미 미국에서 개봉을 하고 올해 베를린영화제 개막작인) 다음 영화 <진정한 용기>는 21세기 서부영화의 걸작이(라고 한)다. |
네 번째 영화. 나도 알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에 대해서는 서로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나는 두 견해 모두를 포함해서 동의한다. 우선 반론. <인셉션>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블랙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야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이 영화의 이야기는 너무 단순해서 문제가 생겼다. 만일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 이야기의 게임을 하자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관람을 말리고 싶다. 이미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뒤트는 것은 1959년 알랭 레네가 <히로시마 내 사랑>을 만든 이후 수 없는 변주가 이루어졌다. <인셉션>은 시각적 효과라는 점에서도 효과적이지 않았다. 고작 예고편에서 본 놀라운 장면들이 정작 영화를 보니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열편에 포함시킨 것은 지난해에 본 영화중에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로지 이 시퀀스를 펼쳐 보이기 위해서 <입셉션>을 찍은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한 알라바이일 뿐이다. 꿈속에 들어간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 일행이 난간을 들이받고 강물로 떨어지면서 세 개의 꿈의 시퀀스가 오가는 장면은 여전히 영화에서 그 어떤 테크놀로지의 도움보다 편집이 얼마나 훌륭한 효과적인 ‘특수효과’인지를(두 개의 효과의 아이러니!) 보여주는 27분간의 곡예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이때 세 가지 씬은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지고 달리고 있었으며, 자동차는 있는 힘을 다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천천히 추락하고 있었다. 명백히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모델로 하여 21세기 버전을 만들고자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 실험적인 시퀀스는 그 순간 쇼트들의 집합 사이에서 한 편으로는 한없이 팽창되고 있는 나선을 따라 열리고 다른 한 쪽 끝에서는 추락의 모티브를 따라 제한된 시간 내에 하강하는 벡터를 따라 수축되는 삼각형 원뿔 통의 침점처럼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걸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볼 때 정말 현대 영화관의 하이테크의 유혹을 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극장의 유혹. 두 번째 이야기 일부 끝. 이부에 계속. |
정성일, 베스트, 2010, 영화, 엉클분미, 시리어스맨, 하하하, 인셉션, 코엔, 놀란, 홍상수, .
http://www.youtube.com/watch?v=aja-8sYjNaY
TEDxSEOUL 김영하
글쓰기는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한 문장의 픽션을 감당하기 위한 나머지 글을 생각하는 행위. 예) 카프카 <변신>의 첫 문장. 어느날 불안한 잠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는 갑각류로 변해 있는 이불 속의 자신을 발견했다.
한예종에서 수업할 때. "내가 가장 불행했던 순간"과 같은 간단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게 시키는데, 5분만 생각하게 하고 한시간, 두시간 동안 미친듯이 쓰도록 독려한다. 이게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는 것보다 훨씬 좋은 글이 나오는 방법이다. 왜냐 하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예술의 적, 예술가의 악마가 마음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게 글이냐? 남에게 비웃음이나 당할 걸? 따위의 예술을 하지 말아야 할 수만가지 이유가 바로 그 악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가가 되지 말아야 할 수만 가지 이유보다 예술가가 되어야 할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나는 1995년에 <리뷰>라는 잡지에 <거울에 대한 명상>이라는 단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폐간되고 없는 이 잡지에 소설을 보낼 때, 내 주변의 문우들은 만류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제대로된' 등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성미 급한 20대였고 '제대로된' 인정을 기다릴만큼 느긋하지를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 작가로 '행세'하고 있었고 그 성급한 자기확신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신춘문예가 소수의 당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물론 그 복음은 매우 한시적이며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향한 또 한 번의 엄혹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에게 새해 첫날부터 울적한 소식을 전하는 이 무렵, 스스로 작가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실은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래왔다는 것을 낙선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작가는 신분이 아니라 직업이라고(이때의 직업이란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고. 그리고 그 자기 확신은 심사위원의 인정보다 책상 앞에 놓인 자신의 원고로부터 올 때 더욱 확고하다. 언젠가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정식화한 적이 있다. "작가가 되려면 이미 작가여야한다."
문학을 시작하기 위해서 선배 작가/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되는(또는 된다고 믿는) 상황은 분명 이상하다. 문학계가 중세의 길드여서는 곤란하다. 나는 문학은 반역의 언어적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인정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작가로 선언하고 제멋대로 써제끼는 새로운 작가군의 출현을 고대해본다.
http://kimyoungha.com/tc/147
소조님은 '외부의 인정이 없이 자기만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예술가는 바로 그런 정신적 어린이들이 나르시시즘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힘들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과대망상, '모두가 나의 재능을 시기하고 있고 그것이 내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믿는 피해망상도 예술가라는 이 힘들고 답이 안 나오는 일을 지속하게 만든다. 그렇다. 예술가들은 일종의 환자다. 그들이 앓는 질병은 독초에서 추출한 약물처럼 '결과적으로' 이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소조님이 작가지망생들에게 주는 충고는 매우 현실적이다. 새겨들을만 하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것은 평론가나 사무원의 일이다. 그와 달리 예술가는 어마어마한 자기확신을 가지고 현실의 풍차를 향해 돌진할 필요가 있다. 소조님은 '재능'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 예술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운이다. 그 운이 올 때까지 자신을 지탱해줄 강력한 자기확신이 필요하다. 내게도 오직 과대망상만이 유일한 후원자였던 세월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그 과대망상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현실을 뛰어넘는 과대망상을 감당하기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그렇지만 계속 써나간다.
소조님은 작가지망생들에게 냉정한 자기 인식'과 '길드'를 권한다. 여기에서 나와 길이 갈라진다. 냉정한 자기 인식은 예술가가 아니라 증권시장의 투자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의 말대로 새로운 '길드(제도)'를 조직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스템을 만드는 자가 승자라는 것은 문학계의 4.19 세대들이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현재의 등단 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나중에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등단제도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문학제도 전반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 개인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줄 좋은 친구/후원자이고 그 첫번째 후원자는 언제나 예술가 내면에 숨어있는 과대망상의 어린 자아일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얘기다. 새로 시작하는 예술가에게 세상물정에 밝은 현실적 어른은 필요없다. 자기 세계를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대체로 어린이들이며 예술계의 혁신자들은 바로 이런 정신적 어린이들이었다. 그 어린이들은 '현실적인' 어른들이 하는 '현실적인' 조언을 얼마간은 귓등으로 흘려들을 필요가 있다. 비현실적 망상이 대단히 낮은 확률로 현실이 되는 세계, 그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여, 미쳐라" 혹은 "예술가는 아이가 되어야한다" 는 말이 낭만주의적 헛소리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조언인 까닭이 거기 있다.
그러나 제도가 어떤 해결책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철학과 세계관이 관련돼 있고, 그것으로 먹고 사는 이들(예컨대 대학의 선생들)의 생계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가 바뀌기를 기다리기 이전에 예술가 개인의 자세를 정확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선은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한 후에, 예술이 주는 즐거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일생의 업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고려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 내면의 열정이다. 낭만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는 게, 이것이야말로 본질이기 때문이다. 소조님 말마따나 '프로페셔널하'게 글을 쓴지가 올해로 17년째이다. 그간 나를 지탱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서 원고를 타이핑하는 순간의 기쁨, 내면의 깊은 문제를 이야기의 형태로 바꾸면서 얻는 성숙의 즐거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갈 때의 희열 같은 것이었다. 다른 것은 부차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 내면의 어린이다 .나르시시즘에 기대 스스로를 지탱하면서 과대망상을 연료로 앞으로 전진해간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 역시 생계마저 어려운 지경이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소설가로 살아올 수 있었을까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기 형편에 따라 예술적 열망과 타협해가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나보다 살림이 윤택한 작가도 있겠고 형편이 어려운 작가도 있겠지만 모두들 나름대로 생계와 예술 창작이라는 난제를 조율해간다. 내 서가에 꽂힌 작가 평전들은 위대한 선배 작가들이 이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그리고 최후까지 내면의 어린이/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 문제들과 씨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박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나, 조울증, 낭비벽, 커피중독과 싸웠던 발자크,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자신을 혐오하던 프로이트(그렇다, 바로 그 프로이트다)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소설을 성인의 예술이라고 할 때, 그것은 장편소설에 요구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성숙한 시선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롤리타>의 험버트, <돈 키호테>의 돈 키호테, <마담 보바리>의 엠마 보바리는 우리 내면의 미성숙한 자아를 대변하고 있다. 이 문제적 성격을 포착하기 위해 작가들은 성인의 성숙하고 숙련된 눈과 어린이의 미성숙한 면을, 마치 언제나 쓸 수 있는 양날의 칼처럼 내면에 감추고 있어야한다. 우리는 양자를 잘 조화시켜 성취를 이뤄낸 작가를 대가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작가들 내면의 이 말썽꾸러기의 어린 자아는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작가를 끌고 가는 기관차이고, 우리가 한없이 고착/탐닉하게 되는 마음의 질병이기도 하다(나는 소조님이 이런 것을 모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이 한국문학의 미성숙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그 반대의 포지션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자, 다시 출발선에 선 작가지망생들의 문제로 돌아오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술가 개인은 시장의 규모도, 진입장벽의 높이도, 정치 제도도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이게 결국 내가 '낭만주의적 '예술가관으로 돌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작가인 나에게 시급한 것은 지금 당장 내 내면의 문제와 대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변화는 다음 문제다. 예술가의 길을 꿈꾸는 이들 역시 엄존하는 세계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되, 그 끝 모르는 사막을 건너갈 연료가 탱크에 충분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한다. 메아리 없는 혹한의 골짜기에서, 한없이 계속될지도 모를 소외와 무시 속에서 자기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한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스스로 내려야한다. 선생과 친구, 심사위원에게 재능을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확인된 재능의 유효기간은 매우 빨리 끝난다. 그때는 다시 자기 내면의 연료를 확인해야한다. 지치지 않는 어린이를 발견해야한다. 예술을 놀이로 생각하는 미친 자아를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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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by do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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